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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24회 부산독립영화제
일시 l 2022. 11. 17. ~ 11. 21.
장소 l 영화의전당,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 무사이 극장
개막작
마녀들의 카니발 THE WITCHES' CAPNIVAL
다큐멘터리┃혼합┃82분|2022
DIRECTOR 박지선
1998년 '부신근로여성의집'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며 밀린 월급을 받고, 생리휴가, 산전산후휴가도 쟁취한다. 세분화된 여성운동이 전개되면서 부산여성들도 가정폭력. 성폭력에 맞서 거리로 나선다. 비슷한 시기, 부산경님지역 여학생들은 대학 내 성폭력규제학칙을 만드는 운동을 활발히 벌였다. 2000년 부산대 최초 패미니즘 축제 <마녀들의 카카니발>이 열렸고, 이후 웹진<월장>, 여학생잡지<헐스토리>까지 페미니스트들의 발화가 이어졌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을 계기로 지기로 '부산성차별성폭력끌장행동'에 참여한 10대, 20대 청년들은 학내 미투 선언과 함께 생존을 외친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부산여자들의 기억과 삶이 부산이라는 공간에 교차한다.
프로그램 노트 부산 지역의 여성운동사에 대한 총체적 이미지를 그려보려는 시도. 박지선 감독은 부산 지역의 여성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활동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미지와 육성을 아카이빙한다. 그 아카이브 작업의 결과물인 <마녀들의 카니발>은 민주화 이전 노조 소속으로 여성주의 운동에 뛰어든 활동가부터 오늘날 스쿨페미니즘 활동각까지를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박지선 감독은 이 작업을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엄정한 태도를 갖고 진행시킨다. 그는 자신이 인터뷰하는 여성주의 활동가의 각기 다른 활동들에 대한 일체의 평가를 거부하고 그저 기록한다. 기록자의 주관이 뒤로 물러나 있기 때문에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여성주의 활동의 기록들은 서로간에 차이를 가지고 있으나 위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위계를 갖지 않으나 차이를 가진 이 활동의 기록들은 <마녀들의 카니발>이라는 단일한 시공간 속에 헤쳐모인 뒤 저마다 증거가 되어 부산 여성주의 운동의 역사담론을 함께 형성한다. 백래시의 시간 속에서 여성주의 운동과 역사의 진보가 잠시 멈춘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오늘, 미디어 활동가 박지선은 자신의 무기인 카메라를 가지고 역사의 반동에 대응하고 있다. (성동욱) |
폐막작
다섯 번째 방 Her 5th Room
다큐멘터리┃컬러┃80분|2022
DIRECTOR 전찬영
시댁살이 30년, 엄마 ‘효정’은 집에 살지만 방이 없다. 전업주부로 20년을 살아온 효정, 상담사라는 직업으로 새로운 가장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집안일은 효정의 몫이다. 일을 시작하게 된 엄마는 평생을 함께 살던 아빠의 방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각방살이의 평온함도 잠시, 엄마는 아빠의 끊임없는 침입에 불안해진다. 그리고 안전한 공간으로 독립을 원하게 된다. 과연 엄마 ‘효정’은 다섯 번째 방을 가질 수 있을까?
프로그램 노트 오래도록 시댁살이를 해온 효정이 뒤늦게 자신의 방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다섯 번째 방>은 당연한 듯 자신만의 공간을 떠올리지 못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이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다 문득 영화 밖에서 감독의 위치를 떠올려 본다면 나의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영화의 또 다른 고민을 읽어볼 수 있다. 자신만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끝끝내 상처 주어야 한다. 차라리 명백한 적이었다면 덜 고통스러웠을 테지만 어머니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드는 사람은 다름 아닌 측은하고 한없이 약해진 아버지라는 존재이다. 감독은 같은 여성이자 자녀로서 자신의 공간을 찾고자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용기 있게 카메라를 들었지만, 정작 화면에 담긴 수많은 장면은 가족들이 서로를 떠나지도 혹은 다가가지도 못한 채 배회하며 내뱉는 웃음과 눈물들이다. <다섯 번째 방>은 뛰어난 흡입력으로 억압받은 엄마 효정뿐 아니라 그녀의 힘겨운 독립과 성장을 함께 지켜보는 가족들까지 응원하게 하며 점점 경시되는 가족의 위치가 무엇인지 새삼 질문하게 만든다. (김현정) |
수상결과
| 시상내역 | 수상작 |
| 대상 | <다섯 번째 방> (2022) 전찬영 |
| 심사위원특별상 | <꽝> (2022) 유소영 |
| <강을 건너는 사람들> (2022) 이남영 | |
| 부산영화평론가상 | <기행> (2022) 이하람 |
| 최우수연기상 | <정순> (2021) 김금순, 윤금선아 |
| 기술창의상 | <약구르트> (2022) 임연이 |
| 관객심사단상 | <다섯 번째 방> (2022) 전찬영 |
제24회 부산독립영화제 포스터

제24회 부산독립영화제 트레일러
메이드 인 부산
[경쟁1]
승우 Seung Woo
다큐멘터리┃컬러┃15분|2022
DIRECTOR 이해솔
국가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14세 아이는 어느덧 54세의 중년이 되었다. 중년의 남자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프로그램 노트 최승우 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형제복지원에 부랑인 선도 명목으로 길거리의 무연고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어린이들까지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킨 인권유린, 국가폭력, 학살 사건이다. 14세에 끌려가서 구타, 감금, 성폭행 등을 당하며 그곳에서 5년간 생활한 승우 씨는 이제 54세가 되었다. 미워했지만 이젠 안쓰러운 아버지가 호스피스 병상에서 링거 줄을 뽑지 못하게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승우 씨는 그곳에서의 과거를 떠올린다. 형제복지원 터는 지금도 생생하게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한 트라우마로 고통은 지속된다. 그는 7년째 온라인으로 트라우마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데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명예회복은 아직 요원하다. “형제복지원 있을 때와 사회에 나왔을 때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이 사회에서 자유를 배울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 그의 신산스러운 고백은 고통의 외현화이면서도 우리의 현실에 대한 통찰이다. 가해자의 만행과 피해자의 고통이라는 기본 구도에 더하여 치유와 회복을 위한 그의 노력과 각성을 이 다큐멘터리는 탁월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상경) |
약구르트 Juiced up
극영화┃컬러┃18분|2022
DIRECTOR 박범진
야구대결에서 승리해야만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주인공 '소범'. 훈련 시간을 늘리기 위해 붕붕드링크 제조에 들어간다.
프로그램 노트 소범이는 한별이를 좋아하지만, 단박에 거절당한다. 다만 항상 별을 관찰하는 게 일상인 한별이는 하늘 멀리 멀리 홈런을 치면 생각해 보겠다는 여지를 남긴다. 배트에 공도 맞추지 못하는 소범에게 야구부 에이스와의 대결 미션은 불가능한 도전. 하지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소범의 의지는 누구보다 비장하고 진지하여, 결국 밤샘 훈련 시간을 늘리기 위해 붕붕 드링크 제조에 들어간다. 소년의 순애보라는 소재와 대중 서사의 익숙한 이야기 전개를 취하고 있지만, 탄탄한 짜임새로 극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매력적인 영화 스타일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컷의 감각이나 극에 효과를 주는 사운드 디자인이 탁월하고, 캐릭터, 미술, 음악, 리듬까지 적절한 완급조절의 합을 이루어낸 연출력이 단연 돋보인다. 무엇보다 영화 전반을 꽉 채운 명랑한 귀여움과 사랑스러운 에너지는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기에 충분한 강점을 지닌 영화다. 홈런처럼 날아든 소범이의 순정으로 한별이의 세계가 핑크빛으로 빛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면, 붕붕드링크의 약발보다 더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나영) |
강을 건너는 사람들 A windy day
극영화┃컬러┃40분|2022
DIRECTOR 이남영
한 때 사진작가를 꿈꾸었던 선재는 선배 현우의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한다. 어느 날, 현우가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며 출사모임이 취소되고, 수습을 하러 나간 선재는 사진초보 가은을 만나 계획에 없던 동행을 한다.
프로그램 노트 부산에서 꾸준하게 필모를 쌓아온 이남영감독은 여전히 섬세하고 사려 깊은 연출로 돌아왔다. 한 때 사진작가를 꿈꾸었지만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는 선재가 예정에 없던 출사모임에 나가 사진초보 가은과 동행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며, 전작보다 조금 더 확장된 세계를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로 애틋한 모녀관계가 주인공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존재한다. 어머니의 낡은 안경을 호호 불어 닦아 놓는 등의 사소하지만 다정한 마음과 가족과 일상을 나누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연출은 보다 정밀하고 풍부해졌다. 마음을 곱게 쓰면 사람마다 다 때가 있다는 어머니의 대사처럼,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단박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의미가 쌓이고 흘러 움직이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남영 감독이 서서히 쌓아올린 일련의 흐름들은 자연스레 스며들어 보드랍게 삶을 어루만져준다. 성숙한 태도로 보다 유려해진 이남영 감독의 성장세는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신나영) |
[경쟁2]
꽝 Water Celery
다큐멘터리┃컬러┃28분|2022
DIRECTOR 유소영
보랏빛 새벽, 오가는 이 없는 한적한 도로 한쪽에 미나리 좌판이 있다. 그 안에서 흰머리를 높이 묶고 노란 고무장화를 양발에 끼우는 한 여성. 빨간 고무대야를 양쪽 허리춤에 끼어들고 바로 뒤에 있는 미나리꽝으로 들어간다. 언양읍성에 마지막 하나 남은 미나리 노점상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카메라는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그녀 앞에 멈춰 서서 숭고한 노동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본다.
프로그램 노트 미나리가 아닌 '밭'에 초점을 둔 작품의 제목은, 푸릇한 결실 대신 그 아래 놓인 질퍽한 땅을 상상하게 한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혼자 살 것 같아. 시집 안 갈 거야'라는 단호하지만 애처로이 들리는 이정애 할머니의 문장들은 개인보다도 여성의 의무로만 살아야 했던 과거 여성들의 가슴 아픈 서사를 대변한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무수한 미나리의 초록은 할머니의 비극적인 서사와 지속적으로 병치되면서, 역설적으로 강인함의 속성을 남긴다. 지난한 세월에 대해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을 할머니의 삶은 기어코 아름답다. 할머니의 고단함과 푸르디 푸른 미나리는 상반되듯 보이지만 결국 서로를 품어야 할 필연임을, 영화는 사려 깊으면서도 강력히 전달한다. (김현정) |
희비 The Rain Spell
극영화┃컬러┃18분|2022
DIRECTOR 이나래
아빠, 남편의 부재 이후 모녀는 서로 다른 이유로 집을 떠나고 싶어 한다. 돈 때문에, 사람 때문에 발이 묶여있던 그들에게 집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생긴다.
프로그램 노트 <희비>는 생략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부재, 할머니와의 거리감, 낡고 불편한 집 등 모녀 가족을 둘러싼 비극적인 배경을 촘촘히 설명하지 않기에 되레 감각을 통해 영화를 감상하게 만든다. 영화의 중심인 비의 장면들은 영화가 전개될수록 거세지며 차가움, 축축함, 당혹스러움을 고스란히 전해주다가 어느새 작품의 제목처럼 비의 감각을 전복시킴으로써 따스함의 정서를 만끽하게 한다. 이렇듯 영화는 서사에서의 구체적 맥락과 강한 갈등을 덜어내는 대신 예민하게 드러난 감각으로 인물들의 어둑한 심연까지 닿도록 만드는데, 특히 나경 역을 맡은 김안나 배우의 차분하면서도 능숙한 연기는 이러한 영화의 호흡에 탁월하게 어우러진다. <희비>는 영화 속 공백을 기꺼이 벅찬 마음으로 채우게 하는, 애틋하고도 따뜻한 영화이다. (김현정) |
새집 The Nest
극영화┃컬러┃10분|2022
DIRECTOR 이준상
아직 가구도 들여놓지 않은 새집을 만끽하는 원우. 그때 누군가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프로그램 노트 내 집 마련과 상대적 궁핍은 청년뿐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는 화두이다. 영화 도입부의 주인공이 텅 빈 새집에서 가구배치를 구상해보고, 애지중지 거울을 닦아보고, 배달 음식과 함께 야경을 감상하고, 거실에 대자로 누워 팔을 휘저어보는 행위로 누려보는 호사는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동경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런 나만의 공간에 예상치 못한 침입자가 등장하며 상황은 전복된다. 이내 좁은 간격을 두고 벌어지는 대치와 긴장은 집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꿔놓는다. 주인공의 처지를 가늠케 하는 전개는 비참한 형태로 실현되며, 새집에서 만끽한 소박한 일상이 허용되지 않는 순간 갈 곳 잃은 눈동자는 관객의 마음을 내려친다. 단편영화 특유의 간결한 힘을 가진 영화로, 주인공 청년의 응축된 세계는 사회적 현실까지 확장하여 상기시킨다. (신나영) |
파도가 지나가고 When the waves pass through
극영화┃컬러┃17분|2021
DIRECTOR 류도현
10년 전, 세란의 자살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다온과 형택. 다온은 죄책감이 가득한 본가를 떠나 홀로 살아가며 취업의 벽을 느낀다. 그렇게 무기력함에 허덕이는 다온은 결국 혼자서 버티기 힘들어 자살하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로 인해 본가로 내려오게 된 다온. 다온은 과거의 세란을 마주하고 자신과 닮은 상황에 부닥친 형택을 보며 깊은 생각에 빠진다.
프로그램 노트 연출자의 고집이 엿보이는 <파도가 지나가고>는 정적이면서도 과감하다. 영화는 마치 파도의 높낮이처럼 어머니의 공백에 무력감을 느끼는 아들과 아버지의 내면을 가만히 따라가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에 요동치는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흔히 위계를 드러내는 세로축을 과감히 덜어낸 채, 가로와 깊이로 장면을 느슨히 직조하다가 영화는 태연히 아들과 아버지를 나란히 놓는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이력서, 면접, 소주병 등의 반복적 배치는 단순한 도식 같으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제작 과정에서 '대사 없음'의 제약에 사로잡히지 않고 억지로 무언가 더하지 않은 장면들은, 서로 느슨하면서도 단단히 결합한 특유의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끝내 서사와 감정을 설득시키는 영화의 여운은 길고도 깊게 이어진다. (김현정) |
[경쟁3]
박문수씨의 기일 The deathday of Park Moon-soo
극영화┃컬러┃13분|2022
DIRECTOR 이아진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환갑이었을 올해의 기일에 각자 따로 살고있던 경찰공무원 정민, 반 백수 수민이 치킨과 제사음식을 사들고 엄마가 있는 집으로 모인다. 수민이 아버지 기일마다 항상 지방문을 챙겨왔었지만 올해는 깜빡하고 들고오지 않았다. 임시로 제사에 사용한 지방문은 바람이 불어 태우지 못하고... 제사 후 가족들은 음복을 하다 시작된 이야기로 정민과 수민이 싸우고 갑자기 정전이 된다. 순간 조용해진 세 사람. 초를 피워두고 가만히 초를 바라본다. 다음날 정민과 수민이 떠나고 사자밥으로 놓아 둔 치킨에 한 입 베어먹은 자국이 나 있다.
프로그램 노트 바닷가 마을의 어느 집. 저 멀리 빨간 등대가 보내고 이미 독립한 남매는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길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입을 맞춘다. 누나의 잔소리를 피하는 방법을 통달한 듯한 동생과 K-장녀이지만 실수투성이 누나. 그들은 두 손 가득 음식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아버지의 기일에 모인 가족은 음식을 챙기고 고스톱도 치면서 잔소리를 가장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아버지의 기일이자 환갑인 제사에 더욱 신경 쓰는 가족들이지만, 아직도 실수투성이에 어설픈 제사를 준비한다. 오늘은 지방문을 두고 와버린 동생. 그런 동생을 구박하는 누나. 어설픈 글씨로 A4용지에 쓴 아버지의 이름이 어딘지 낯설고 미안하기만 하다. 시골에서 혼자 지내는 엄마가 걱정인 누나는 엄마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동생은 괜히 집에 대한 향수를 고백한다. 이런 동떨어진 마음은 큰소리로 번지는데 왠지 모르게 마당의 전등이 때마침 죽어버린다. 영화는 매일 똑같은 일상의 하루이자, 연례행사가 돼버린 아버지 기일이기도 하며, 함께였다면 환갑을 기념했을지 모를 어느 날을 담담하게 그린다. 그러면서 가족 간의 신경 쓰는 마음과 애정을 듬뿍 담아 표현한다. 아버지 제사에 모이게 된 가족 이야기는 단편 영화에서 종종 쓰이는 소재이고 무뚝뚝한 가족 간의 사랑 이야기하는 영화는 많다. 그러나 여기 가족들은 그저 하루를 담담히 보내고 서로를 챙기며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간다. 그들은 또 어느 날 함께 모여 고스톱을 치고 안부와 잔소리를 섞어 말하며 남매는 싸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챙겨 준 음식들을 들고 돌아갈 것이다. (박성림) |
30세_남_이청대_연기영상.mp4 30_male_Lee Chung-dae_acting video.mp4
극영화┃컬러┃23분|2022
DIRECTOR 서한솔
청대는 오디션 지원을 위해 연기 영상을 찍어야 하는데 대사를 끝까지 치기도 전에 집으로 의문의 택배 박스가 배달된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방해공작에 청대는 연기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프로그램 노트 연기 지망생인 이청대는 영화 오디션을 위해 연기 영상을 의뢰 받는다. 청대에게는 중요한 기회이다. 그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정장까지 차려 입고 카메라 앞에서 독백을 이어 나간다. 그가 맡게 될 배역은 연기를 지망하다가 포기하고 회사 면접을 본 취준생으로 현실의 벽에 좌절하는 역할이다. 누구보다 자신이 적임이라 생각하는 청대를 방해하는 초인종 벨 소리. 그에게 온 택배 박스에는 여성용 빨간 구두가 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영상 제작을 시작하는 청대. 이번에는 설정을 추가 했다. 소주 한잔 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대사를 하는 청대에게 이번에는 선거 유세가 그의 연기를 방해한다. 이번에는 또 누가 그를 방해할까? 그의 여자 친구다. 청대의 원룸에 그녀는 숨을 곳이 없고 그의 연기를 쳐다보는 여자 친구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청대. 그때 여자 친구는 빨간 구두를 발견해 버린다. 30세의 이청대는 이번 오디션에 꼭 합격하여 자신의 꿈을 이어나가고 싶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은 그를 계속 방해한다. ‘녹록치 않은 현실을 이겨내며 꿈과 희망을 놓치지 않는 청년 이청대'라고 이 영화를 요약하기에는 아쉽다. 청대는 오디션 영상을 위해 오늘 하루를 다 써버렸다. 수많은 방해를 견디며 하루 종일 애를 쓴다. 하지만 현실의 청대는 연기지망생이자 백수이며 누구의 남자친구이고 누구의 오빠이기도 하다. 청대는 분명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누가 그의 애씀을 이해할까? 청대조차 자신의 열정이 좋은 연기를 위한 것인지, 오디션 합격을 위한 것인지, 유명 배우가 되는 것인지 고민한다. 어느새 영화는 촬영 현장으로 바뀌고 카메라 앞 청대에서 현실 청대로 넘어 오는 순간, 청대는 자신의 연기를 평가할 수 없다. 선택권이 상실된 청대가 부여잡고 앞으로 나아갈 것은 무엇인가. 영화는 30세_남_이청대의 모습에 중첩시킨 현실이 아른거려 흥미로운 지점을 유발한다. (박성림) |
벼랑에 핀 꽃 On The Cliff
실험┃컬러┃14분|2022
DIRECTOR 김종한
기령은 복직을 위해 김부장에게 사과하러 간다. 호목은 수능 시험에 대한 부담으로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 가지고 나온다. 종한은 두려움에 갇혀 있는 자신을 이겨내기 위해 벼랑으로 간다.
프로그램 노트 세 명의 인물이 교대로 출연한다. 기령은 김 부장에게 사과하면 사장이 복직시켜 주겠다고 하여 사과하러 간다. 호목은 8년째 응시하고 있는 수능에 대한 부담감으로 편의점에 소주를 사러 간다. 중2 때 날개가 생긴 종한은 날개의 신경을 짓누르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벼랑으로 간다. 작은 글씨로 된 자막을 읽어야 이런 사연들을 알게 되는 세 인물들은 각기 다른 장소에 앉거나 서거나 걷거나 달린다. 그러나 영화는 작은 자막으로 상징되듯 서사의 활동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오가는 영화를 주로 선보였던 김종한 감독이 이번에 조금 더 극영화에 접근하는 듯하나 여전히 그의 관심은 인물들이 위치하는 장소로 보인다. 조금 더 강하게 말하면 인물이나 자막은 그의 풍경 적당한 곳에 배치된다. 그러니 자막의 색깔이나 위치는 벽, 하늘, 숲 등의 배경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종한이 입는 옷과 모자도 주된 피사체의 형태와 색깔에 따라 변색하고 달라진다. 카메라로 베어내서 만든 그의 캔버스는 여전히 유려하고 감탄을 자아낸다. 내레이션으로 오랜만에 세상을 향해 목청을 높이는 부분도 이채롭다. 감성 충만한 음악은 관객의 취향을 탈 것 같다. (이상경) |
너에게 닿기를 I Wish
다큐멘터리┃컬러┃25분|2022
DIRECTOR 손호목
2016년 2월. '306호'는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과의 계약으로 '푸른 하늘'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이곳에 살기 시작했다. 비록 전세고 작은 원룸이었지만 한 몸 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넓은 창에서 쏟아지는 햇살과 탁 트인 전경이 마음에 들었다. 내리는 햇살처럼 한동안 이곳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단, 그 날이 오기 전까지... 2020년 2월. 모든 것이 사라진 그날. '306호'는 이곳을 떠나야 했지만 그녀는 점점 그에게서 멀어져만 갔고 결국 그에게 큰 상처를 주고 묘한 흔적을 남기며 사라졌다. '306호'는 반드시 그녀를 만나야만 한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반드시 받아야 할 것도...
프로그램 노트 '너에게 닿기를'이라는 제목을 포털에서 검색해보면 일본의 순정만화와 영화로 제작된 작품과 ‘우주소녀’와 ‘제이플라’의 곡 제목이기도 하다. 감독 역시 이러한 대중 작품을 충분히 알고 있는 듯하다. 그가 쓴 시놉시스를 보면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애타게 찾는 주인공의 여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이다. 그것도 아주 내밀하고 서늘한. 2016년 감독은 한 원룸에 집을 구했다. '푸른 하늘'이라는 이름을 가진 원룸의 306호에 자리를 잡은 감독. 그리고 이 건물은 모두 한 사람의 소유로 보인다. 바로 '꽃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사람. 집주인이다. 그의 원룸생활은 행복하게 마무리될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영화는 대낮의 창 너머를 바라보며 소주병을 들이켜는 감독의 뒷모습과 그의 처절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감독이 닿고 싶은 그 사람. 내 돈을 들고 잠적한 그 사람. 바로 집주인과 연락을 하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시간에 대해 말이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 그녀의 행위가 감독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감독은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이웃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사연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이웃들 중에는 돌려받지 못한 전세 보증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한 분도, 이제 갓 학교에 입학한 학생도 있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법복을 입고 덕담을 건네는 그녀와는 이렇게 연락이 닿지 않을까? 이해 안 되는 이 상황과 답답한 심정에 치미는 화는 피해자들끼리만 공유 가능하다. 결국 상황은 법적 판단으로 넘어가게 되겠지만 세입자로서의 삶이 개개인의 미래까지 저당 잡히는 상황을 감독은 복잡한 심경 고백을 통해 표출한다. 집주인의 부동산 투기의 끝에는 무엇이 남는 것인가? 연락이 닿지 않는 그녀의 메시지 프로필 저 너머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 이 상황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인가? 포털에 '전세 사기'를 검색을 해보면 수많은 피해자와 피해사례가 나오는데, '갭 투자'라고 검색하면 300채의 집주인과 슈퍼 리치의 바이블이 나온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보이는 이 간극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는 꼬리를 무는 답답한 질문 속에서 감독 개인의 가슴 아픈 고백을 통해 서늘하고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면을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하다. (박성림) |
[경쟁4]
정순 Jeong-sun
극영화┃컬러┃105분|2021
DIRECTOR 정지혜
동네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정순은 세월에 억척스러워질 법도 한데, 자신의 이름처럼 여전히 정순하게 살아간다. 그런 정순에게 공장 동료이자 또래인 영수가 다가온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며 둘만의 은밀한 관계를 즐기고, 영수는 그 관계를 휴대폰 카메라로 담는 것을 즐기는데…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프로그램 노트 정순은 오늘도 출근한다. 식료품을 포장하고 납품하는 공장에서 흰색 작업복을 입고 작업장의 클린룸을 거치고 오늘도 그녀는 일한다. 그녀는 이제 곧 결혼을 앞둔 딸을 챙겨야 하고 깐깐하게 구는 회사의 직장 상사를 달래야 하며 어린 동료들과 하루를 어울리고서는 집 안 정리도 도맡아야 한다. 정순의 삶에는 누군가의 침범을 방어해야 하고 누군가의 눈치도 보여야 하며, 다른 이의 뒷담화도 덤덤히 넘겨야 한다. 그러나 오늘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자기 삶에 예의를 갖춘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영수가 등장한다. 어딘가 어리숙하고 일머리도 없는 그는 몸도 성치 않아서 누군가에 의지해야 한다. 그런 이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정순은 어느새 그가 눈에 밟힌다. 그리고 그와는 오랫동안 감췄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싶다. 정순은 그런 사람이다. 예의 바르고 솔직하고 누구보다 주위 사람을 아낀다. 하지만 솔직한 감정 표출이 누군가에 의해 박제되고 공유되며 희화화된다.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이 참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소비된다. 가해자도 공범자도 심지어 그녀의 딸조차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그리고 당연히 이 상황을 제대로 대면하고 수습할 수 없다. 이것은 애초에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든 대상화의 대상이 아니며 오롯이 자신의 행위는 그 자신에게만 결정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시대에 만연한 불법 촬영과 그 파장을 정순이라는 인물을 통해 직접적 피해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제시되는 타인에 대한 침범과 서로에 대한 간섭에서 끝까지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예의를 지키려는 정순을 만나게 한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가 타인에 대한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여지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박성림) |
[경쟁5]
다섯 번째 방 Her 5th Room
다큐멘터리┃컬러┃80분|2022
DIRECTOR 전찬영
시댁살이 30년, 엄마 ‘효정’은 집에 살지만 방이 없다. 전업주부로 20년을 살아온 효정, 상담사라는 직업으로 새로운 가장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집안일은 효정의 몫이다. 일을 시작하게 된 엄마는 평생을 함께 살던 아빠의 방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각방살이의 평온함도 잠시, 엄마는 아빠의 끊임없는 침입에 불안해진다. 그리고 안전한 공간으로 독립을 원하게 된다. 과연 엄마 ‘효정’은 다섯 번째 방을 가질 수 있을까?
프로그램 노트 오래도록 시댁살이를 해온 효정이 뒤늦게 자신의 방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다섯 번째 방>은 당연한 듯 자신만의 공간을 떠올리지 못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이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다 문득 영화 밖에서 감독의 위치를 떠올려 본다면 나의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영화의 또 다른 고민을 읽어볼 수 있다. 자신만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끝끝내 상처 주어야 한다. 차라리 명백한 적이었다면 덜 고통스러웠을 테지만 어머니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드는 사람은 다름 아닌 측은하고 한없이 약해진 아버지라는 존재이다. 감독은 같은 여성이자 자녀로서 자신의 공간을 찾고자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용기 있게 카메라를 들었지만, 정작 화면에 담긴 수많은 장면은 가족들이 서로를 떠나지도 혹은 다가가지도 못한 채 배회하며 내뱉는 웃음과 눈물들이다. <다섯 번째 방>은 뛰어난 흡입력으로 억압받은 엄마 효정뿐 아니라 그녀의 힘겨운 독립과 성장을 함께 지켜보는 가족들까지 응원하게 하며 점점 경시되는 가족의 위치가 무엇인지 새삼 질문하게 만든다. (김현정) |
[경쟁6]
기행 Beyond
극/실험┃컬러┃94분|2022
DIRECTOR 이하람
한국전쟁 당시 숲에 숨어살던 벙어리소년은 어느 날 나타난 탈영병에 의해 먹을 것을 빼앗기고 굶어 죽게된다. 그 과정에 처녀귀신을 만나 지옥을 거쳐 천국으로 인도받아 구원받게 되는 이야기의 작품
프로그램 노트 한국요괴도감의 해석, 처녀귀신의 배회, 구슬픈 허밍으로 시작하는 불안하고 의뭉스러운 이미지들은 전형적인 고전 호러의 전개를 따를 것으로 짐작된다. 이어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들 또한 굶주린 탈영병, 벙어리 소년, 눈 먼 할머니, 병약한 동생을 돌보는 소녀, 저승 문턱에서 까딱까딱 손짓하는 하얀 소복의 귀신까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전설 속 대표 캐릭터들을 내세운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암울한 현생의 무게와 가혹한 사연들을 뒤로 하고 영화는 전혀 예기치 못할 신묘한 방향으로 흐른다. 소년과 귀신이 지옥으로 떠나는 여정의 구간은 단연 가장 매혹적인 씨퀀스다. 수묵 산수화 같은 아름답고 처연한 풍경들을 한없이 따라 걷다 보면, 어떤 공포와 의심도 시름과 욕망도 걷히고 무해한 본연의 존재로 돌아가는 해탈의 단계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기행>의 다소 거친 무성 영화적 이미지와 순정의 상상력으로 이뤄진 이상한 세계의 향연은 어쩌면 본질적 체험을 통한 삶의 위로를 건네는 남다른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낭만 설화를 독특한 연출 스타일로 구현해낸 이색적이고 진귀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신나영) |
스펙트럼 부산 - 나우
[비경쟁]
초월 Beyond the Threshold Garden
다큐멘터리┃컬러┃38분|2022
DIRECTOR 김지곤
신초량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원’이라는 단어로 이어보고자 한다.
프로그램 노트 개인적으로 김지곤 감독의 <초월>은 소품이라 생각한다. TMI지만 <초월>은 「新초량 아카이브」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부산 초량 일대가 주무대인 해당 아카이브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매립과 개발 속에 수장된 부산 원도심의 역사와 기억을 다시 쌓아 올리는 예술적 실험”. <초월> 역시 다소 의미심장한 문구로 영상을 시작한다. 오프닝이 끝나면 소박한 풍경들만 펼쳐놓지만 말이다. <초월>에서 관람자가 줄기차게 보고 듣게 되는 것은 꽃과, 사람과, 꽃나무를 나누게 된 아기자기한 사연들이다. 어떤 면에서 <초월>은 오프닝과 그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기대치를 고려하면 꽤 언밸런스한 작품 같다. 다만 평소에 소품을 즐겨온 사람이라면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밸런스다. <초월>은 오프닝의 문제의식도 ‘좀’ 중요하고, 이후로 펼쳐내는 소박한 풍경들도 ‘좀’ 중요하며, 화분을 도둑맞아서 꽃나무를 나누게 된 개인의 사연을 듣는 것도 ‘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일 뿐이다. 대품(?)처럼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강조하기보다, 현실에서 저마다 좀 중요한 것들을 계속 중요하게 느껴볼 시간을 좀 기획했을 뿐인, 소품에 불과하다. 그러니 <초월>을 보실 분들은 이 TMI성 소개문은 까먹고 늘 하시던 것처럼 소품의 시간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김영광) |
여기, 나의 정원 Here, My Garden
다큐멘터리┃컬러┃21분|2021
DIRECTOR 김지곤
창가로 보이던 영주아파트를 찾아가 그곳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바라만 보고, 상상만 하던 공간 속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다.
프로그램 노트 ‘아직도 이런 곳이 있어?’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동네의 풍경. 잊혀져 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듯,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어떤 것을 찾아가는 김지곤 감독의 짧은 다큐 <여기, 나의 정원>의 카메라는 부산의 초고령 시민 아파트의 화단과 텃밭으로 다가간다. 카메라에 담기는 모든 것들이 푸릇푸릇하다. 맑고 청명하다. 고양이 발톱, 접시꽃, 분꽃, 제비꽃, 모과, 매실, 오이, 깻잎, 고추... 누군가 그 아름다움을 붙잡으려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본다. 하지만 폰 카메라는 화단에 핀 꽃잎의 색감과 밝기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이때, 우리는 불현듯 주민들이 가꾸는 거기, 그 정원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감독은 텃밭을 가꾸는 주민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듣는다. 신혼집으로 시작해 벌써 40년 가까이 이곳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아파트에 담긴 추억을 이야기하고, 부산 최초의 아파트라는 자부심을 담아낸다. 하지만 지금은 초고령 아파트가 되어, 초고령자들만 남아있다며 씁쓸히 말을 끝맺는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화단과 텃밭. 그런데 이곳이 어쩐지 쓸쓸하게 보이는 건, 이 동네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지연) |
검치호 Tiger's Trigger
극영화┃컬러┃85분|2022
DIRECTOR 이강욱
가망 없는 엄마를 간병하며 병실생활 중인 소녀. 커튼으로 구분된 바로 옆 침대에는 과묵한 노인이 치매 걸린 아내를 돌보고 있다. 어느 날, 소녀는 응급환자가 떨어뜨린 총을 발견하게 된다.
프로그램 노트 이강욱 감독의 장편 데뷔작 <검치호>는 액션영화이다. 감독과 약간의 교분이 있다는 것은 가끔 쓸모 있는 일이기도 한데, 한 영화의 제작여건을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어서다. “많이 아쉽다”는 얘기를 정분이 날만큼 들어서인지 <검치호>는 볼 만한 액션영화였다. 개인적으로 동양액션은 호금전, 장철로 대표되는 무협적인 세계관을 바탕에 둔다고 생각하고, 영화사에서 최초로 시도된 장편 영화가 권투 다큐멘터리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서구적인 액션과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인생의 복싱 영화로 분류되는 것이나, 서부극의 건 파이트를 빌려온 두기봉식 느와르가 무협영화의 적통으로 불리는 것은 동서막론의 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길은 격투라는 몸의 서사 이상이 있다는 얘기고, 협(俠)이라는 ‘무드’의 세계관 정도는 공유한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협은 무엇인가? 호협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호협함의 협 역시 같은 한자(俠)라서 뜻이 중복된다. 일종의 선문답 같은 이 세계관은 <검치호>를 통해 이 정도는 말할 수 있다. 중복이 아니라 거듭, 호협할 수 있는가. <검치호>는 정통액션을 향한 호협함을 거듭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 분명한 기대감 덕분에 아쉬운 데뷔작이다. (김영광) |
뼈 The Bone
다큐멘터리┃컬러┃69분|2022
DIRECTOR 신나리
이 이야기는 일부 북부 아키타 지역의 조선인 강제동원자를 기억하기 위해 40년이 넘는 세월을 고군분투해온 두 사람의 이야기다. 전후 일본의 경제성장과 탁월한 능력으로 사업가로 성공한 재일교포 하정웅, 일본 북부 아키타 지방에서 공동체 문화마을을 일궈온 일본 비주류 사학자 차타니 쥬로쿠. 다자와 호수에 세워진 히메관음상의 비밀을 풀고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80세가 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프로그램 노트 <뼈>는 2015년 단편 극영화 <그 자리>, 단편 다큐멘터리 <천국 장의사>로 영화 연출 경력을 시작한 이래 어느덧 열 번째 작품을 완성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신나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신나리 감독은 장편 데뷔작 <녹>(2018)에서 다루었던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인 강제 동원 문제에 다시 한번 접근하면서 <녹>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시도한다. <녹>이 지금은 쇠락한 두 지역의 광산 이미지 사이에서 퍼포먼스를 연출함으로써 역사적 상흔에 대한 위로를 영화가 직접 수행하는 전략을 택한다면, <뼈>는 히메관음상에 얽힌 은폐된 역사를 파헤쳐 조선인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오랜 시간 분투해온 두 인물에게 영화의 목소리를 내어준다. 이들의 목소리를 경유한 영화의 질문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강제징용 문제 앞에서 오늘날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김나영) |
유령의 해 Eternal Brightness
장르없음┃컬러┃125분|2022
DIRECTOR 오민욱
유령들의 해가 떠오른다.
프로그램 노트 오민욱은 <해협>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홍콩행을 생각했겠지만 코로나-19로 세계가 봉쇄되었다. 그는 민간인 학살을 다룬 조갑상의 소설 <밤의 눈>을 영화로 옮긴다. 영화는 실제를 바탕으로 쓴 소설과 사건 내지는 역사, 그리고 영화 안팎으로 제작과 관련해 일어난 근래의 일들에 대해 극도의 정제와 가공을 거쳐 내놓은 입장, 혹은 반응처럼 보인다. 그것은 발췌된 원문, 저자에게 보내는 편지, 연출자와 출연자의 경험이 함께 섞였을 긴 대사의 형태로 언어화되고, 밤의 눈인 달이 차거나 기우는 보름 동안 소설의 배경이 되는 부산 곳곳을 배회하는 인물의 행위로,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도시와 밤을 헤맨 카메라와 아카이브로 드러난다. 이를 통해 과거의 흔적이란 남아있을 것 같지 않게 고요한 현재의 시공간 위로 유령이 된 죽음의 현전과 그 기원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이 엄습해 온다. 강렬한, 말 없는, 이상한, 낯선, 두려운,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들. (김지연) |
페이퍼맨 Paper Man
극영화┃컬러┃129분|2022
DIRECTOR 기모태
"그래 이 x같은 세상아. 니들끼리 잘 쳐 먹고 잘 살아라!” 목에 걸린 금메달과 뒷주머니엔 사진 한 장, 그리고 불편한 허리. 인목은 지나가는 노인만 봐도 눈에 쌍심지를 켜는 40대 중반이다. 허름한 집마저 강제퇴거 통보를 받게 되자 속세를 벗어나겠다며 당차게 산을 오르는 인목인데.. 출가마저 자격이 필요하다. 체면은 있고 갈 곳은 없어 지친 그는 한적하고 그늘진 다리 밑 생활을 시작한다. 다리 밑에 먼저 거주하고 있던 할배는 인목을 보고 미소 짓지만 영 기분이 나쁘다. 추울 때도 할배에겐 반듯한 박스 침낭이 있다. 이에 보란 듯이 박스를 주워 침구를 만들기 시작하는 인목. 하지만 박스 줍기는 쉽지 않고 각자의 구역에는 임자들이 있다.
프로그램 노트 기모태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페이퍼맨>은 주인공 인목(곽진)이 거처를 잃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은 것이 목에 건 메달뿐인 인목은 다리 밑에서 살아갈 궁리를 하는데, 다리 밑에는 인목처럼 갈 곳 없는 이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40대 남성 인목은 가출 소녀, 폐지 줍는 노인, 자폐 청년 사이에서 경제 활동에 가장 유리해 보이는 인물이지만 과거가 남긴 심신의 상처가 깊은 그 역시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입장이 곤궁하긴 마찬가지다. <페이퍼맨>이 인목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전반적으로 유머가 깔려 있지만, 삶의 궁지에 몰려 다리 밑에서 만나게 된 다종의 인간군상에서 드러나는 것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김나영) |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The Day after Yesterday
극영화┃컬러┃76분|2022
DIRECTOR 윤지혜
늦은 밤, 영화를 보고 나온 민영과 우진은 폐 구조물 앞 도롯가에서 이별한다. 불 켜진 우진의 집 주변을 서성이던 민영. 돌아서 나온 골목길 위에는 또한 헤어지는 중인 두 남녀가 서 있다.
프로그램 노트 윤지혜 감독의 장편 데뷔작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는 현실의 재현으로부터 재현이 이루어지는 현실적 공간을 통과해 재현의 재현으로 이행하는 흐름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더욱 근사하게 만드는 것은 영화 속 현실과 영화 속 영화를 잇고 확장하는 매개가 ‘움직임’과 ‘빛’이라는 영화적 속성의 가장 단순한 두 쌍이라는 사실이다. 섬세하게 설계된 조명이 인물과 공간에 부여하는 빛과 설명적인 이야기 대신 영화의 시간을 채우는 인물의 걸음을 통해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는 복잡한 논리나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인물이 속한 시공간의 속성을 변화시킨다. 영화 전체의 리듬은 걸음의 속도에 좌우되고 걸음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인물의 감정인 이 작품에서 감정의 변화는 곧 세계의 변화인 것이다. (김나영) |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I said I had a dream
극영화┃컬러┃38분|2022
DIRECTOR 지준혁
뮤지컬배우를 꿈꾸는 태완은 사회를 맡은 결혼식에서 리안과 우연한 재회를 가진다. 둘의 부모님은 함께 살다가 관계를 정리하고 헤어진 지 오래다. 둘은 지나온 과거와 서로 다른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태완은 엄마의 전화를 받고 고향에 내려가 방문한 백제불교도래지에서 오래된 친구와 또 다른 우연한 만남을 가진다. 그 속에서 우연과 인연들은 서로 맞물려 필연으로 이어진다.
프로그램 노트 태완은 사회를 보러간 결혼식에서 우연히 지안을 만난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 약간의 머뭇거림, 툭툭 끊기는 대화와 어긋나는 시선. 멈칫하고 눈치보는 공기. 둘은 연인이었을까? 아니면 채무관계? 모르긴 몰라도 지금 마냥 반갑기만 한건 아닌 듯 하다. 그리고 카메라는 못해도 왕복4차선은 될 것 같은 도로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담는다. 관음적 느낌이 덜한 선에서 줌을 당겨보지만 어쩔 수 없이 거리가 멀다. 마치 그들의 어색한 관계처럼. 그리고 여기에 서려있는 이상한 거리감과 묘한 서투름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변치않고 유지된다. 뒤에 다른 이야기가 더 있지만 이 영화를 관통하는 무언가는 바로 이 느슨하면서도 긴장되는, 역설적 팽팽함 같다. 그러니까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삼켜버린 말, 감정, 상상과 욕망, 과거… 그런 것들. 그리고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에는 이런 마음의 역설적 조각들이 여기저기에 서려있다. 영화가 어쩌면 꿈이라는 오래된 명제를, 이 짧고 소박한 영화가 다시 한번 시도한다. (구형준) |
마지막 점심 The last lunch
극영화┃컬러┃11분|2022
DIRECTOR 임병호
청첩장을 나눠주기 위해 들린 커피집에서 예물반지를 잃어버린 수연은 친구 예은과 지수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프로그램 노트 돌잔치를 앞둔 엄마와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그리고 계약직(으로 보이는) 직장인. 수연, 예은, 지수는 친구 사이다. 그들은 가까워 보이지만 동시에 그 틈엔 은근하고 아득한 균열이 있다. 셋은 점심시간에 만나 수다를 떨며 근황을 나눈다. 그런데 중요한 반지가 없어지면서 셋 사이에 보이지 않던 균열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마지막 점심>은 한정된 공간과 현실적인 상황, 그리고 일상적 풍경 내에도 어떤 서스펜스가 도사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냉혹한 이면과 얼마나 깊이 관계 맺고 있는지 짧고도 영리하게 풀어낸다. 여기엔 간단한 불신에서 배태되는 계급적 우화가 있다. 이 세 명의 사회적 얼굴이 서서히 벗겨질 때 비로소 나타나는 당황하는 얼굴과 의심하는 얼굴, 그리고 어처구니 없거나 분노하는 목소리 교차는 평화로운 카페의 어느 점심시간에도 누군가 무너고 부서질 수 있음을 드러낸다. (구형준) |
잘 모르는 날 Unknown day
드라마┃컬러┃21분|2022
DIRECTOR 이승은
부모님의 재혼으로 남매가 될 예정인 '재은'과 '지언'. 재은은 세번째 재혼을 하는 엄마가 이해가 되질 않고. 새아빠에게 자식이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따위는 관심도 없었는데 엄마의 속임수에 넘어가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모를 지언과 하루를 보내게 된다. 만만치 않은 성격의 두 사람의 잘 모르겠는, 이상한 하루이다.
프로그램 노트 <잘 모르는 날>에서 ‘날’은 ‘day’일까 ‘me’일까? 물론 둘 모두를 뜻하는 중의적 제목일 수도 있다.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영화 속엔 이 두 의미가 교차하며 새겨져 있는 것 같다. 각자의 엄마와 아빠가 결혼하게 되어 초면이지만 의붓남매가 될 처지인 재은과 지언은 정작 결혼당사자인 부모들은 없이 둘이서 만나 인사를 하고 식사를 한다. 하지만 마치 친남매처럼 까칠한 성격이 닮은 둘은 서로도, 서로의 부모도, 그리고 그들의 결혼과 오늘의 만남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둘은 잘 모르는 사람과, 잘 모르겠는 하루를 보내고 돌아간다. 그런데 그들은 정작 잘 모르는 시간 속의 자신들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말장난 같은가? 하지만 이 영화의 중의적 제목처럼, <잘 모르는 날>은 모든 의도와 감정과 서사적 방향을 하나의 의미로 규정하기 어려운 상태 그대로 두고, ‘잘 모르는’ 상태를 그리는데에 집중한다. 그렇게 <잘 모르는 날>은 우리가 매일 겪으면서도, 우리 스스로도 잘 모른 채 지나치는 하루들을, 그리고 나 스스로를 잠깐 되돌아보게 만든다. (구형준) |
스펙트럼 부산 - 리와인드
[비경쟁]
마녀 Witch
극영화┃컬러┃18분|2004
DIRECTOR 홍성훈
도시의 빌딩 한가운대 순결한 소년들만이 볼 수 있는 마녀의 숲이 있다. 마녀는 순결한 소년들을 숲으로 유인해 정액을 먹고 수 천 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도시가 점차 순결을 잃어가고 숲으로 들어오는 소년들이 사라지자 마녀는 정자은행을 턴다. 한편 정부에서는 순결한 소년들을 관리하고 그들에게 삐라를 뿌리는 일을 맡기게 된다.
프로그램 노트 <마녀>는 이미지의 축제가 벌어지는 영화다. 강렬한 이미지의 퍼레이드를 펼치며 특유의 역동성과 리듬을 즐길 수 있게 만든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순결한 소년의 정액을 먹으며 숲에서 생을 부지하는 마녀들이 ‘순수 소년’의 정액을 구하지 못하자 정자은행에서 도난사건을 일으키고, 거리에선 거룩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순결한 소년을 모집해 일명 ‘순수소년공작당’을 만들려는 캠페인을 벌인다. 순결한 소년임을 입증받은 소년은 순수소년공작당 당원으로서 전단을 날리는 임무에 충실하지만 결국 도심의 숲속에 사는 마녀에게 정액을 빼앗기고 만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마녀>의 서사에는 명백한 논리가 없다. 마녀를 사회악으로 지정한 것인지, 정부의 무능한 행태를 풍자한 것인지, 애초에 거룩사회란 무엇인지. 영화는 질문조차 혼란스럽게 만든다. 다만 이 영화를 한번 보면 잊기가 힘들다. 전단을 날리는 소년의 절제되고 아름다운 동작과 꽃가루처럼 날리는 전단, 마녀가 사는 숲의 음산하고 퇴폐적인 분위기, 무엇보다 한 숏 한 숏을 보고 느끼고 나면 정갈한 서사를 넘어서는 이미지의 힘을 절감하게 된다. (홍은미) |
로 Old Circle
극영화┃컬러┃13분|2010
DIRECTOR 김정남
공장에서 일하는 성혁. 그에게 벌어지는 낯선 상황들.
프로그램 노트 한국으로 일하러 온 베트남 노동자의 사망 소식이 뉴스의 음성으로 깔리고, 마치 철창 속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1936)에서 조금도 달라진 바 없는 현실 속에 살아가는 주인공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본다. <로>의 성질을 직감할 수 있는 씬들이다. 그런 요소는 또 하나 더 있다. 영어 제목 ‘Old Circle'에서 지시하듯, <로>는 원형 운동의 이미지가 반복된다. 이는 벗어날 수 없는(정말 말 그대로 쳇바퀴 돌 듯) 노동자의 순환하는 운명을 은유한다. 마치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를 보는듯한 배경과 미술은 영화가 가진 어두운 분위기와 인물이 가진 절망을 한정된 공간에서 구현할 수 있게끔 일조한다. <로>는 자칫 진부해보일 수 있는 주제를 이미지와 미쟝센으로 돌파하는 흔치 않은 영화다. (김민우) |
미싱 Missing
극영화┃컬러┃21분|2008
DIRECTOR 손승웅
성인. 성장이 멈춘 그 시기에 잠들어버린 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간의 탐욕과 무관심 속에 조각조각 신체를 강탈당한다. 느린 시간 속에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게 죽음을 맞는 아이들의 반복.
프로그램 노트 이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두고 공포를 느끼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다. 아들(최상규)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죽어가고, 엄마(김은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아이를 찾는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좀 이상하지만) 묘하게도 <미싱>은 어떤 아련함이 있다. 어쩌면 그건 배우 그 자체의 힘일수도 있겠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제목 ‘Missing'은 실종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명사로 쓰게 될 경우 ’그리움‘의 뜻이 된다. 아들은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따뜻했던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다음 아이에게 따스하게 환대하는 엄마의 모습과 호응하여 더욱 이 세계를 섬짓하게 만든다. (김민우) |
면회 The Generation That Is Not Promise
극영화┃컬러┃20분|2004
DIRECTOR 안현준
남자와 여자가 군대에 면회를 가기 위해 만나고, 면회를 가는 길에 여관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한다. 다음날, 남자는 혼자 기차를 탄다.
프로그램 노트 안현준 감독의 <면회>는 밍밍한 수수께끼를 품은 듯한 작품인데, 그 수수께끼보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를 지금 보는 감회다. 2004년도에 만들어진 <면회>는 엔딩크레딧에 표기된 “SONY PD100” 모델로 촬영되었다. DV 테이프 특유의 질감, 초당 29.97 프레임의 영상, 4:3 스탠다드 비율의 화면비. 영화는 한 시대의 공기를 품는다는 고풍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2022년도에 보는 <면회>는 펜데믹 이후 뉴미디어 플랫폼에서 활성화된 미감과 호응한다는 감회를 안긴다. 일단 초당 29.97 프레임 이상의 현실적인 미감이 기본 감상 값인 것도 그렇지만, VLOG 형식에서 파생된 콘텐츠들이 주축을 이루면서 ‘평범성’과 개인이 전달하는 ‘사적인 감정의 진실’들이 소통을 이루는 측면이다. 현재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 플랫폼의 개인 사용량은 넷플릭스 같은 OTT 모델의 4배를 육박한다. 이 말은 ‘잘 만들어야 봐주는’ 매체가 추구하게 되는 극화와 승화, 공적 진실이라는 비범성이 이제 실질적인 소통에 약점이 된다는 얘기다. 요지는 조금은 열악하고 저풍(?)스러운 영상들이 외려 소통의 장점이 되는 영상문화가 생겼고, 2004년산인 <면회>는 그 싱싱한 영상문화와 호응하는 밍밍한 ‘독립영화’라는 점이다. <면회>가 품은 수수께끼는 참 말하기 어렵다. (김영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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