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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삶과 세계에 대한 반응이라면, 안건형은 치열한 성찰을 통과해 구축한 자신의 형식을 세상에 내놓는 작가다. 재현 혹은 기록이라는 영화 매체에 대한 이분법적 규정은 그의 카메라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 경계를 다시 그려내려는 시도의 연속이 안건형의 영화이력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의 영화가 시작되는 지점은 사소한 일상으로부터다. 각자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수집해 구조화한 <일과 날>(2025), 그 먼 기원에는 ‘<고양이가 있었다>(2008)’. 일찍이 안건형은 신선장 횟집,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카메라로 관찰했다. 바다의 윤슬, 여름 오후의 적요함, 직사광선, 앞마당에 물 뿌리는 일마저도 영화에서는 스펙터클이 된다. 다큐멘터리의 스타일로 인물과 상황을 세밀하게 포착했지만, <고양이가 있었다>는 극영화다. 서로 닮았거나 순도 높은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들 대부분은 비전문배우이고 카메라는 인물들의 동선과 대사를 따라 사전에 준비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인물들은 명백히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쑥스러워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주저하는 장면을 보면, 영화는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다큐멘터리 같다. 혹은 멀찍이 물러난 자리에 괴어놓은 카메라가 담소를 듣고 있을 때, 최소한의 상황만이 부여 되었거나 그마저도 없었던 건 아닌지 하는 추정은 무리지 않다. 불확실성 앞에 놓인 영화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사유는 어디서나 무엇으로나 넓고 깊게 뻗어나갈 수 있다. 영화예술에 대해 카메라로 자유롭게 써내려간 에세이 <동굴 밖으로>(2011)는 일상에 스민 인식 안에서 예술의 원칙을 고민하는 안건형이 그려낸 매혹적인 의식의 지도다. 길고양이를 대상으로 삼은 그의 카메라는 삼각대에 고정되지 못하고 대상을 따라 흔들리고, 기다려주지 않는 고양이보다 늘 한발 늦거나 초점을 놓친다. 그렇게 카메라가 쓰레기장과 주차장, 화단을 배회하는 동안, 안건형은 자신의 주변을 다시 발견하고, 이 여정에서 예술이 견지할 태도를 깨닫는다. 감정을 끌어낼 쉬운 방법을 버릴 것. 대상을 존중할 것. 본다는 행위의 불완전함을 잊지 않을 것. 이는 창작자에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다. 그렇게 안건형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파편을 모아 보편의 윤리를 획득한다. 


과거를 어떻게 현재로 불러들일 수 있는가? 안건형이 내놓은 방법론은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2014)에 있다. 남아있는 문헌들을 바탕으로 프레임 내부를 구성한 문장들이 책의 한 페이지처럼 배열되고 각주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책이기에 사운드는 없다. 그의 표현은 ‘논문’,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림책에 가깝겠고, 영화형식의 언어로 말하자면 이 이미지들은 몽타주가 될 것이다. 홍제천과 세검정,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복원된 과거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념이 복원된 것이라는 날카로운 통찰이 빛난다. 다양한 자료를 배치해 현재의 이미지들 안에서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작업은 우리의 사고를 환기한다.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작업이 아카이브 푸티지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인을 관두는 법>(2018)일 것이다. 정치·사회·역사의 현상에 대한 예민한 분석을 기반으로 방대한 문헌들로 구성한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에서, 아카이브란 단순한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반영하며, 영화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예술가의 실천이자 성명(聲明)이다. 

안건형의 영화는 세계를 향한 태도와 사유의 방식이다. 끊임없는 탐색을 통해 그는 관습을 의심하고, 이미지의 힘과 한계를 실험하며, 형식과 사유를 동시에 전진시키는 드문 작업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한국독립영화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영화가 할 수 있는 질문과 성취의 범위를 타진하는 장소가 된다. 한국독립영화에는 안건형이 있다. 

 

김지연

영화가 삶과 세계에 대한 반응이라면, 안건형은 치열한 성찰을 통과해 구축한 자신의 형식을 세상에 내놓는 작가다. 재현 혹은 기록이라는 영화 매체에 대한 이분법적 규정은 그의 카메라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 경계를 다시 그려내려는 시도의 연속이 안건형의 영화이력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의 영화가 시작되는 지점은 사소한 일상으로부터다. 각자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수집해 구조화한 <일과 날>(2025), 그 먼 기원에는 ‘<고양이가 있었다>(2008)’. 일찍이 안건형은 신선장 횟집,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카메라로 관찰했다. 바다의 윤슬, 여름 오후의 적요함, 직사광선, 앞마당에 물 뿌리는 일마저도 영화에서는 스펙터클이 된다. 다큐멘터리의 스타일로 인물과 상황을 세밀하게 포착했지만, <고양이가 있었다>는 극영화다. 서로 닮았거나 순도 높은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들 대부분은 비전문배우이고 카메라는 인물들의 동선과 대사를 따라 사전에 준비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인물들은 명백히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쑥스러워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주저하는 장면을 보면, 영화는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다큐멘터리 같다. 혹은 멀찍이 물러난 자리에 괴어놓은 카메라가 담소를 듣고 있을 때, 최소한의 상황만이 부여 되었거나 그마저도 없었던 건 아닌지 하는 추정은 무리지 않다. 불확실성 앞에 놓인 영화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사유는 어디서나 무엇으로나 넓고 깊게 뻗어나갈 수 있다. 영화예술에 대해 카메라로 자유롭게 써내려간 에세이 <동굴 밖으로>(2011)는 일상에 스민 인식 안에서 예술의 원칙을 고민하는 안건형이 그려낸 매혹적인 의식의 지도다. 길고양이를 대상으로 삼은 그의 카메라는 삼각대에 고정되지 못하고 대상을 따라 흔들리고, 기다려주지 않는 고양이보다 늘 한발 늦거나 초점을 놓친다. 그렇게 카메라가 쓰레기장과 주차장, 화단을 배회하는 동안, 안건형은 자신의 주변을 다시 발견하고, 이 여정에서 예술이 견지할 태도를 깨닫는다. 감정을 끌어낼 쉬운 방법을 버릴 것. 대상을 존중할 것. 본다는 행위의 불완전함을 잊지 않을 것. 이는 창작자에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다. 그렇게 안건형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파편을 모아 보편의 윤리를 획득한다. 


과거를 어떻게 현재로 불러들일 수 있는가? 안건형이 내놓은 방법론은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2014)에 있다. 남아있는 문헌들을 바탕으로 프레임 내부를 구성한 문장들이 책의 한 페이지처럼 배열되고 각주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책이기에 사운드는 없다. 그의 표현은 ‘논문’,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림책에 가깝겠고, 영화형식의 언어로 말하자면 이 이미지들은 몽타주가 될 것이다. 홍제천과 세검정,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복원된 과거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념이 복원된 것이라는 날카로운 통찰이 빛난다. 다양한 자료를 배치해 현재의 이미지들 안에서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작업은 우리의 사고를 환기한다.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작업이 아카이브 푸티지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인을 관두는 법>(2018)일 것이다. 정치·사회·역사의 현상에 대한 예민한 분석을 기반으로 방대한 문헌들로 구성한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에서, 아카이브란 단순한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반영하며, 영화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예술가의 실천이자 성명(聲明)이다. 

안건형의 영화는 세계를 향한 태도와 사유의 방식이다. 끊임없는 탐색을 통해 그는 관습을 의심하고, 이미지의 힘과 한계를 실험하며, 형식과 사유를 동시에 전진시키는 드문 작업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한국독립영화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영화가 할 수 있는 질문과 성취의 범위를 타진하는 장소가 된다. 한국독립영화에는 안건형이 있다. 

 

김지연

딥포커스 1

11.21.(금) 15:30 영화의 전당 소극장

11.22.(토) 10:00 영화의 전당 인디플러스

고양이가 있었다 House of the Freshness
안건형|다큐멘터리|컬러|113분|2008
딥포커스 2

11.22.(토) 19:00 영화의 전당 소극장  CINE TALK

11.23.(일) 19:00 영화의 전당 소극장

동굴 밖으로 Out of the Cave
안건형|다큐멘터리|컬러|92분|2011
딥포커스 3

11.21.(금) 18:00 영화의 전당 인디플러스

11.22.(토) 14:50 영화의 전당 소극장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 With This Thou Wilt Not Perish
안건형|다큐멘터리|컬러|64분|2014
딥포커스 4

11.22.(토) 16:30 영화의 전당 소극장

11.23.(일) 11:00 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

한국인을 관두는 법 How to Stop Being Korean
안건형|다큐멘터리|흑백|113분|2018
딥포커스 5

11.22.(토) 12:30 영화의 전당 인디플러스  GV

일과 날 Works and Days
박민수 안건형|다큐멘터리|컬러|84분|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