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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카메라에 담기지 않거나, 담지 못하는 순간이 더 많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았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터이지만, 우리가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의 그 수만큼 우리의 시야를 벗어나 어둠으로 쇄도해 버리는 것의 수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스물여섯 번째 부산독립영화제 개막작은 이창우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밤의 유령>(2023)이다. 이 작품은 부산지역 여성 대리운전기사들이 직접 바디캠으로 촬영한 1인칭 영상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마트폰에서 널리 사용되는 대리운전 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지도 위 작은 점으로 부유하는 밤의 유령들에게 존엄을 부여하는 이 작품은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인상과 함께 적잖은 온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평범함을 초과하지 않는 이 만남이야말로, 타인의 여정을 유령처럼 대리하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늘진 세상 곳곳을 향한 공감으로 파수꾼을 자처하는 이 만남이야말로, 어둡고 시린 길고 긴 밤과 같은 이 세상을 인간다움으로 지탱하고, 아름다움으로 지켜내는 시간이라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_오민욱
개막작 상영
일시: 2024년 11월 21일(목), 19:00
개막작: <밤의 유령>
밤의 유령 Night ghosts
다큐멘터리┃컬러┃DCP┃60분┃2023
대리운전 콜을 잡는 전쟁을 치르며 휴대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현실과 진상고객에게 듣는 모욕적인 욕설까지 묵묵히 감내하며 목적지까지 차를 몰아야 하는 여성대리기사들의 시린 삶의 현장이 가감없이 펼쳐진다. 한 건이라도 콜을 더 타기 위해 새백까지 자신을 혹사해야 하는 이들도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 대리기사들의 상호부조 조직인 ‘카부기공제회’에 가입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언니,동생을 알게 되었고 이들이 서로 애환을 나누며 심야화장실 찾기 앱도 만들고, 자기보다 더 어려운 대리운전 기사를 돕기 위해 십시일반하는 공동체도 키워나간다. 현실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여성대리기사들의 잡초같은 생명력도 만만치 않다.
매일같이 밤의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처에 있지만 좀체 보이지 않아서 스스로를 ‘밤의 유령’이라 칭하는 이들의 직업은 대리운전수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영화 속 인물의 말을 그대로 옮겨봤지만, ‘콜’에 웃고 ‘콜’에 우는 이들을 실생활에서 만나기가 대단히 어려운가 생각해보면 꼭 그렇진 않다. 다만 <밤의 유령>은 그간 우리가 자세히 보거나 들으려하지 않았던 여성 대리운전수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그로 인한 고초를 보여줌으로써 그 ‘볼 수 없음’의 속뜻에 한 발짝 다가가게 한다. 바디캠에 고스란히 담긴 심야의 행로에 시선을 겹치다보면 노동의 현장에 도사리는 비상식적 폭력에 덩달아 분개하지 않을 수 없지만, 거친 호흡으로 전해지는 실제 상황을 단순히 극화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단 점이 이 다큐멘터리를 감동적인 시선으로 보게 한다. 서로 연대하는 공동체 내부의 움직임과 그런 이들에게 건네지는 따스한 손길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이들의 유령성이 실로 어디서부터 규정되었는지 되묻는다.
_함윤정
이창우
dlpwoo@gmail.com